동문인터뷰
국민의 오늘과 국가의 미래, 그 사이를 잇다
국회의원 김남국(행정학과’01학번) 동문
법조인에서 교육자로, 정치인으로 이어진 행보에는 ‘사람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일’이라는 하나의 지향점이 자리하고 있다. 대학에서 삶의 방향을 고민하던 청년은 변호사가 되어 누군가의 억울함을 풀고, 모교 강단에서는 후배들의 성장을 함께했으며, 이후 정치에 뛰어들어 법과 제도를 통한 변화를 모색해 왔다. 국회와 대통령실에서 입법과 행정을 두루 경험한 그는 최근 국회에 재입성해 새로운 의정활동을 시작했다. 다시 출발선에 선 김남국 동문에게 그간 걸어온 길과 앞으로 만들어가고 싶은 사회에 관해 물었다.
중앙대학교 재학 시절 어떤 학생이었나요.
여느 대학생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학업도 놓치지 않으면서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다 보니 늘 바빴던 기억이 나는데요. 무엇이든 한번 시작하면 열심히 해보려는 성격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진로 고민도 많았습니다. 특히 군 복무 이후에는 ‘무엇이 될 것인가’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더 많이 생각했죠. 교사의 길도 생각했고, 공무원과 변호사도 고민했습니다. 직업은 달라도 공통점은 하나였는데요. 제가 가진 능력을 바탕으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었죠. 그 생각이 이후 제 삶의 여러 선택을 관통해 온 듯싶습니다.
전남대학교 로스쿨 졸업 후 법무법인 예율에서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와,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변호사를 선택한 데에는 두 가지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사회에 공적으로 기여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고, 다른 하나는 조직이나 틀에 얽매이기보다 제 판단과 책임으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법은 때로 차갑고 어려운 언어이지만, 제대로 작동할 때 한 사람의 인생을 지켜주는 가장 강력한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은 의뢰인의 형사사건입니다.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살피며 이전 재판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던 법리적 쟁점을 찾아냈고, 결국 대법원에서 원심이 파기되는 결과를 얻었죠. 판결문 몇 장이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며, 법률가가 다루는 사건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삶이 담겨 있다는 점을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모교 공공인재학부 강사로서 언어논리 영역을 강의하기도 하셨습니다. 강의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쑥스럽지만 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학부 시절 은사님께서 농담처럼 “졸업하면 후배들 좀 가르쳐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법학전문대학원을 거쳐 변호사가 된 뒤 실제로 인연이 이어져 모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게 됐죠. 처음에는 로스쿨이나 공직 진출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제가 겪은 시행착오를 나눠주자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러나 막상 강의를 시작하고 보니 오히려 제가 배우는 것이 더 많았는데요. 1학년 때 처음 만났던 학생이 어느덧 졸업해 변호사가 되고, 이제는 법조인으로 자기 몫을 해나가는 모습을 보는 기쁨은 무엇과도 바꾸기 어렵습니다. 지금까지도 ‘사제’ 관계라기보다 가까운 선후배처럼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그 시간이 특별하게 남은 이유는 누군가의 성장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만큼 보람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2020년 출마 배경으로 ‘절박함’을 꼽으며 21대 총선에 출마하셨습니다. 정계 입문 계기와, 당시 어떤 포부를 갖고 계셨나요.
변호사로 일하며 시민사회 활동과 여러 공익 사건에 참여하다 보니 비슷한 어려움과 억울함을 겪는 분들을 반복해서 만나게 됐습니다. 한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이 더 근본적인 해결이 아닐까’라고 고민하게 됐죠. 그러던 중 국회의원들과 여러 현안을 다루며 정치 참여를 권유받았고, 그것이 총선 출마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정치의 존재 이유를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결국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드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기회가 부족한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를 열어주고,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줄이며, 다음 세대가 살아갈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죠.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의 ‘절박함’도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지난 21대 국회 의정활동에서 비전과 목표가 무엇이었나요.
가장 중시했던 원칙은 정치는 국민의 삶 속에서 결과로 증명돼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GTX-C 상록수역 정차처럼 매일 출퇴근하는 시민의 시간을 줄이는 일에서부터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처럼 환자 생명과 권리를 보호하는 입법까지, 국민이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었죠. 물론 정치에는 국가 방향을 정하는 큰 담론도 필요한데요. 그러나 국민에게는 오늘 아침 출근길이 얼마나 걸리는지, 부모님이 안심하고 수술받을 수 있는지, 아이를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지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정치란 거대한 국가 비전과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연결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해에는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으로 근무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하셨나요.
대통령의 SNS 메시지와 디지털 소통, 주요 정책의 온라인 홍보 등을 담당했습니다. 대통령의 생각과 정부 정책을 어떻게 하면 국민께 더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이해하기 쉽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자리였죠. 국회에서는 주로 법과 제도를 만드는 관점에서 정부를 바라봤다면, 대통령실에서는 정책이 결정된 뒤 수많은 부처와 기관을 거쳐 실제 행정으로 집행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책은 국민이 이해하고, 현장에서 작동하고, 삶의 변화로 체감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점을 깨달았는데요. 입법과 행정을 두루 경험했다는 점이 현재 의정활동에도 큰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6.3 재보궐선거에서 안산시 갑에 출마해 당선되셨습니다. 당선 소감과, 22대 국회에서 추진할 주요 현안이 궁금합니다.
다시 일할 기회를 주신 안산시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도 느껴지는데요. 저를 다시 국회로 보내주신 뜻은 ‘과거를 잊었다’는 의미가 아닌, 다시 맡긴 만큼 제대로 일하며 결과를 만들어 내라는 무거운 주문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선 GTX-C 상록수역 본공사 착공과 신안산선 등 교통 현안을 속도감 있게 챙길 계획입니다. 동시에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와 안산사이언스밸리, 한양대 ERICA, 경기테크노파크를 혁신 생태계로 연결해 AI·첨단로봇·미래 제조산업을 안산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결국 제가 만들고 싶은 안산은 좋은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모이고 가정을 꾸리며 오래 살아가고 싶은 도시입니다.
선후배 중앙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저는 동문의 힘이 단순히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인연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각 분야에서 성취한 중앙인들이 그 경험을 다시 학교와 후배, 사회에 돌려준다면 모교의 힘도 함께 커질 겁니다. 저 역시 한 사람의 중앙인으로서 제가 받은 것을 후배와 사회에 돌려드리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또한 후배 중앙인에게는 인생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너무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요. 어떤 길을 걷든 그 경험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돌아가는 길이 훗날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되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면 저 역시 처음 그렸던 길대로만 살아오지는 않았는데요. 선생님을 꿈꾸기도 했고, 행정을 공부한 뒤 법학을 공부해 변호사가 됐으며, 모교에서 후배를 가르치다가 정치의 길에 들어섰죠. 그 과정이 언제나 순탄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어느 하나 헛된 경험은 없었는데요. 그때 만났던 사람, 배웠던 것, 때로는 실패와 후회까지도 다음 선택을 조금 더 깊게 만들어 줬죠.
동문님께 ‘중앙대’는 어떤 의미였나요.
제게 중앙대학교는 인생의 변곡점이자, 방향을 찾지 못해 고민하던 스무 살 청년에게 길을 보여준 곳입니다. 대학 시절에는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고민이 참 많았는데요. 그때 좋은 은사님들을 만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혔고, 다양한 경험에 부딪히며 조금씩 제 삶의 방향을 찾아갈 수 있었죠. 웃고 고민하고 도전했던 수많은 기억이 제 삶의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제게 중앙대는 단순한 모교를 넘어, ‘20대 청년 김남국’이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준 곳이자 소중한 추억이 깃든 공간입니다.
[대담 정리 : 박환희(신문방송’20)학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