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의료봉사 동행기
뜨거운 여름, 봉사로 만난 사람들.
봉사가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봉사 현장을 다녔고, 7~8년 전부터는 어린이와 청소년 300여 명을 대상으로 ‘다문화 인식 개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참여해 왔다. 합창 무대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키우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끼며, 음악을 통해 미래 세대를 만나고 그들에게 필요한 일을 찾아 함께하는 일은 어느새 자연스러워졌다. 그렇게 봉사는 삶의 한 부분처럼 자리 잡았다.
중앙대의료원 교육협력 현대병원이 올해로 9번째 카자흐스탄 해외의료봉사를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봉사’라는 말 자체가 낯설지는 않았기에 선뜻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출국일이 가까워질수록 마음 한편에는 긴장감이 생겼다. 의료라는 전문적인 영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의료진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나는 무엇을 보탤 수 있을까? 봉사에는 익숙했지만, 의료봉사 앞에서는 이상하게도 조금 주춤하는 나였다.
그렇게 시작된 한여름의 카자흐스탄. 막상 그곳에서 지내보니 그동안 해왔던 봉사와는 조금 달랐다. 특별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마주한 작은 장면들이 오래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다.
한 정신과 전문의가 TV 프로그램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만나기 힘든 큰 행복을 기다리기보다, 일상의 작은 행복을 기록하라’는 이야기였다. 돌아보면 이번 여름도 거창한 무엇으로 기억되지는 않을 것 같다. 뜨거웠던 날씨와 낯선 곳의 냄새, 피부에 닿던 습도, 사람들과 나눈 따뜻한 눈빛과 미소. 아마 나는 ‘올여름 카자흐스탄에 다녀왔다’ 라는 사실보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마주했던 평범하고도 따뜻한 순간들을 더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출국하던 날 아침, 봉사단이 모이기로 한 시간보다 한 시간쯤 일찍 도착했다. 조금 여유롭게 출국 준비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캐리어와 의료 물품을 마주한 순간, 그 생각은 금세 달라졌다.
서로 어색할 법한 순간에도 누구 하나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짐을 한쪽에 내려놓고 의료 물품을 챙기던 모습이었다. 누가 무엇을 맡을지보다 지금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먼저 살폈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였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손을 보태던 모습이 현대병원 의료봉사단의 첫인상이었다.
카자흐스탄의 한여름은 뜨거웠다. 햇볕 아래에서는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그럼에도 봉사단은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의료진은 진료를 준비했고, 통역은 환자와 의료진 사이를 오갔다. 접수팀도, 식당도, 내가 속한 불소팀(치과진료를 돕는 업무를 하는 팀이라 불소라고 이름붙였다.)도 저마다 필요한 일을 찾아 움직였다.
환자들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현대병원의 봉사 지역은 카자흐스탄의 딸띄고르간. 수도 알마티나 아스타나와 같은 대도시에 비해 의료환경이 취약한 지역이다. 그런데 이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더 먼 곳에 사는 환자들도 한국에서 온 의료진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 대중교통으로 3시간 이상, 택시로 2시간 이상을 달려온 것이다.
두 개의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할머니 한 분도 그렇게 오신 분이다. 긴 이동이 버거웠는지 차에서 내리는 순간 몸이 휘청했고, 곁에 있던 봉사자와 급히 달려가 부축했다.
3시간. 누군가에게는 하루 중 지나가는 몇 시간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오랜 기다림 끝에 꼭 필요한 진료를 받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거리였다.
세 살 남짓한 남자아이가 계속 울었다. 칫솔과 칫솔컵을 건네고, 달콤한 초코파이와 사탕을 쥐여줘도 좀처럼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통역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이는 말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제야 아이의 울음이 다르게 들렸다. 이 작은 아이의 울음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엇이 불편한지, 무엇을 원하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이를 바라보며, 말 대신 울음으로 마음을 전해야 하는 답답함을 잠시 헤아려보게 됐다.
하루의 일이 끝날 오후 시간쯤, 단체 채팅방에 ‘피자천사’가 나타났다는 반가운 소식이 올라왔다. 덕분에 숙소 근처 피자집에 봉사자들이 모였다. 처음 만났을 때의 어색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피자 한 조각을 나누며 각자의 하루를 이야기했다. 하루 종일 사람을 돌본 사람들이 그날 밤에는 서로의 하루를 돌보고 있었다. 봉사는 어쩌면 이런 모습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수고를 알아주고, 지친 사람에게 잠시 쉬어갈 자리를 내어주는 것.
이번 봉사에서 단연코 인상 깊은 인물을 꼽자면, 김부섭 병원장이다. 봉사단의 리더인 동시에 의사로서 현장을 지키는 모습은 내게 큰 울림이 되었다. 살인적인 수술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책임감 있게 살폈다. 몸이 지칠 때면 링거를 맞으면서까지 환자를 살폈고, 병원에 하나둘 불이 꺼진 뒤에도 가장 늦게까지 현장에 남아 있었다.
김부섭 병원장의 수술을 통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한 사람의 삶이 달라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누군가에게 의료는 단순한 치료를 넘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의료봉사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우리가 왜 이 먼 곳까지 찾아와야 하는지 몸으로 배운 순간이었다.
이번 봉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카자흐스탄에서 만난 고려인의 역사다.
1937년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이곳까지 내몰렸던 고려인들. 척박한 땅에서 삶을 일구며 살아남아야 했던 그들의 역사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김부섭 병원장이 우슈토베 언덕에 추모 공원을 세웠다. 그곳의 추모비에는 낯선 땅에서 삶을 이어가기 위해 땀과 눈물을 흘렸던 고려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현장에서 마주한 또 하나의 장면이 오래 남았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고려인들이 서툰 한국어로 아리랑을 부르고 있었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라서였을까. 그들이 부르는 아리랑은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았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들의 노래를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내 연주로 답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8박 9일의 여정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인 만큼 의견이 엇갈리는 순간도 있었고, 조율이 필요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은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호흡이 맞기 시작했고, 우리는 결국 한 팀이 되어갔다. 우리는 모두 한 방향,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이번 여름, 봉사를 통해 한 가지 확신을 얻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는 것. 먼 길을 온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것, 수고했다고 등을 토닥여주는 것, 의료인은 아니지만 아픈 다리를 한 번 더 살펴주는 것,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어주는 것. 그렇게 작은 배려와 성의가 모이면 한 사람의 하루를 조금 덜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이번 봉사를 한 문장으로 남긴다면, 이 말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
“의료봉사는 병이다.”
병을 덜어주러 갔다가, 내가 오히려 병을 얻어왔다. 한 번 다녀오면 또 가고 싶어지는 병. 낫지 않아도 괜찮은 병. 누군가를 돕는 순간 오히려 내가 치유되고, 시간이 지나도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잊지 못해 가끔은 가슴이 저릿해지는 병.
이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카자흐스탄의 뜨거웠던 여름을 떠올리면 자꾸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도 해진다. 그 더위 속에서 일 년을 기다리는 환자들과 고국을 그리워하는 고려인분들, 봉사자들이 서로에게 건넸던 마음들이 참 따뜻했고, 참 아름다웠기 때문일 것이다. 벌써 그립다.
- 자료 협조:김한울(현대병원 홍보팀장)